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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1 우리의 애가(哀歌) (애 5:1-12)
작성일 :  2020-09-06 11:48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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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 던져지다라는 뜻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이름 그대로 그의 한평생을 심한 환난의 잿구덩이 가운데 던짐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비극의 사람, 눈물의 사람, 슬픔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애가(哀歌)를 남겼습니다. 그는 조국 땅의 그리운 얼굴들이 포로로 잡혀가 주인을 잃어버린 황폐한 예루살렘 성터에 주저 앉아서 파괴된 성전, 백성이 만난 기근, 불안과 공포, 불과 창검의 위협 앞에서 한없이 울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왜 그토록 슬퍼하며 울고만 살아야 했을까요? 왜 슬픔의 노래인 애가를 부르고 남겼을까요? 오늘 나와 나의 교회와 조국에는 이것이 필요 없을까요? 나는 6.25 동란 70주년을 앞에 두고 아직도 아물줄 모르고 있는 동족과 조국의 상처 앞에서 우리의 애가라고 하는 제목으로 몇 가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一. 우리에게 전란의 애가가 주어졌습니다.

  이사야 선지 말기에 히스기야 왕이 행한 종교개혁은 그의 아들 므낫세왕의 반역적 행동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악한 왕의 치세 55년간은 정말 그 백성 사이에 우상의 종교 천지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 아들 암몬에 이어 왕을 이어 받은 어린 왕 요시야는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불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과의 전투에서 그만 일찍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요시야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치명적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은 후에 가장 슬퍼한 사람은 예레미야였습니다(대하 35:25). 그는 이때 백성에게 애가를 지어 가르쳤습니다. 그 후 여러 왕들의 무능과 실정 끝에 마지막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앞선 선왕들의 악이란 악은 모조리 받아 자행했습니다. 또한 신흥제국 바벨론을 피해 어리석게도 애굽과 동맹하여 바벨론에 항거해 보려다 끝내 두 아들을 잃고 자기의 두 눈마저 빼앗긴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화려한 성전은 정복자들의 오락장으로 변했습니다. 성전의 기명들은 약탈을 당하고 아름다운 조각품들은 정작처럼 불태워졌습니다. 그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던 이스라엘 국가의 심장 예루살렘 성전은 잿더미로 화하고 궁전과 시온의 거리는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너진 성벽, 소실되어 버린 성물, 쓰레기가 되어 버린 집들, 시체의 무덤이 되어 버린 거리, 공포의 도가니 예루살렘, 포로가 된 왕과 왕국, 울고 있는 고아, 비탄에 빠진 과부, 노예가 되어버린 백성. 이모든 것이 예레미야를 울리며 비절참절케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부터 이천오륙백년전 이스라엘 땅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꼭 70년 전 바로 이 달 주일(50625)에 나와 나의 조국이 당한 비극이고 지금도 계속되는 전란의 애가입니다.

  二. 증거자가 당한 학대로 인한 애가입니다.

  정말 인간 예레미야는 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그를 명령하는 권세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명령은 그 백성의 죄와 죄의 결과인 비참의 운명을 선포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말씀에 포로가 되어 그 명령을 따라 민중의 학대 속에 뛰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그는 먼저 이 말씀으로 인해 그의 공향 친척들에게 까지 학대를 받았습니다(12:6). 2. 그는 이제 그에게 임한 이 말씀을 가지고 군중들과 제사장들과 다른 동역하는 선지자들에게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죄의 화가 임박했다고 절규했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무지하게, 선지자들은 더 흉하게, 제사장들은 더 교활하게 그를 박해했습니다(26:9). 그들은 전국적으로 그 반대 기세를 규합하여 이 사람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중론을 일으켜 사형선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비겁하게 변명하거나 숨지 않았습니다.(26:14-15). 3. 그는 이제 불 붙는 말씀의 가슴을 가지고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오히려 대노하며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무참하게 매질한 후 토굴 속에 감금시키고 말았습니다. 선지자는 이 사실 앞에서 울어야만 했고 가슴을 쳐야만 했습니다. 6.25! 이것은 전쟁의 아픔뿐 아니라 거룩한 진리의 증거자가 학대당한 흔적입니다. 동란 전의 환란도 환란이거니와 6.25 당시 장로교 목사 141, 전도사 9, 감리교 목사 44, 성결교 목사11, 구세군 7인 등 진리의 증거자들이 순교 내지 납치를 당했습니다(기독교 연감). 266개의 교회가 불탔고 705개 교회는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한국 기독교 부흥의 발원지 역할을 하던 YMCA건물은 공산침략자들의 사무실이 되었고 그 외 수많은 기독교 건물들이 괴뢰군의 발굽 아래 더럽혀졌습니다. 진정 우리의 애가! 이것은 심장과 골수를 쪼개는 아픔이었습니다. 살육과 방화, 겁탈과 파괴, 배반과 복수 등 온갖 참상이 얽히고 설켰던 동족상잔의 피맺힌 6.25! 그것은 우리 교회들이 부른 애가였습니다.

  三. 피난의 애가입니다.

  바벨론의 침략 속에 남은 유대인들! 동족끼리의 쟁변을 또 치르고 애굽으로 피난해 가는 패전의 백성들! 비애의 무리 속에 예레미야가 끼여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곳저곳 흩어진 유대인을 찾아다니며 타락한 무리들 틈에 끼여 하나님께로, 고국에로 돌아가자고 피 끓는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곳에서 백성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이 또한 6.25가 가져온 피난의 서러움, 일천만 이산가족을 유발시킨 참화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그리고 한국의 위정자들은 이 백성 앞에서 애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위정자는 애가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큰 회개 신앙과 순종의 울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날, 영화로운 새 임금이 출현하는 날,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의 우리만의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실컷 가슴 치며 통곡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영광스런 그 날을 소망하며 부르는 우리들만의 애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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